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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 고기, 이제는 ‘제조’합니다 : 동아사이언스

Created
2021/11/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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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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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위드의 연구원들이 세포를 배양하는 바이오리액터를 살펴보고 있다. 이곳에서 세포는 한 달간 증식, 분화한다. 남윤중 제공
인류는 새로운 고기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기존 공장식 축산에서 불거진 동물 윤리 문제와 환경 문제가 외면하지 못 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2013년 네덜란드의 한 대학의 실험실에서 처음 탄생한 배양육도 그 후보 중 하나다. 동물에서 추출한 세포를 증식, 분화시켜 근육이나 지방 조직을 얻는 배양육은 이론적으로는 실제 고기와 거의 유사한 맛과 향을 낼 수 있다. 특유의 비릿한 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식물성 고기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강점이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고, 아직 일부 동물 유래 물질에 의존해야 하는 등 기술적으로 극복해야 할 장벽도 있다.
과연 고기를 제조하는 시대, 곧 올까.
페트리 접시 위에 탱글탱글한 주황빛 물체. 지난 5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 위치한 배양육 제조 업체 씨위드의 실험실에서 처음 만난 배양육은 어딜 봐도 ‘고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굳이 식품 중에 고르자면 젤리와 가장 가까운 외형이었다. 실험용이라 세포의 양이 적은 탓도 있었지만 고기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실망도 잠시, 배양육을 굽자 고소한 고기 냄새가 났다. 젤리에서 고기 향이 피어오르다니, 기이했다. 인간이 이토록 ‘고기 향’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놀라웠다. 배양육에선 식물성 대체육을 구울 때 나던 비릿한 향이 전혀 나지 않았다. 동물 단백질이 구워지며 나는 고유의 향이었다. 아쉽게도 가축이 아닌 쥐 세포로 만든 배양육이었기에 시식은 할 수 없었다.
이 ‘고기 향’ 덕분에 배양육은 현재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소비자들이 고기의 맛과 향을 포기하지 않고도 공장식 축산이 일으키는 문제를 없앨 수 있게 돼서다. 그동안 공장식 축산에 거부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의 선택지는 식물성 대체육이 유일했는데, 이제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배양육은 등장한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세계 곳곳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배양육은 2013년 마크 포스트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 교수가 실험실에서 최초로 만들었다. 이후 이를 상용화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고, 지난해 미국 기업 ‘잇저스트(Eat Just)’가 세계 최초로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배양육 식품 승인을 받았다. 이스라엘 기업 ‘퓨처 미트 테크놀로지스(퓨쳐 미트)’는 올해 6월 배양육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역시 세계 최초였다.
배양육 시장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마켓앤드마켓은 2025년 배양육 시장 규모를 2억 1400만 달러(약 2543억 원)로 예상했다. 2032년엔 5억 9300만 달러(약 7047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분석대로라면 연평균 성장률은 15.7%에 달한다. 국제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올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높은 성장세가 유지될 경우 2030년까지 배양육 시장이 전 세계 육류 시장의 1%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에서도 여러 기업이 배양육 제조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식품 대기업인 대상그룹과 CJ제일제당, SPC그룹 등이 배양육 기업이나 배양 기술을 갖춘 기업에 투자했다. 씨위드, 다나그린, 셀미트 등의 스타트업은 배양육 제조 기술을 직접 개발하고 있다.
○ 배양할 수 있는 세포도 여러가지
배양육 제조 기업 씨위드가 한우 세포로 만든 소 모양 배양육. 세포를 입체 구조로 키울 때 뼈대(스캐폴드)의 모양을 달리하면 배양육을 다양한 형태로 제작할 수 있다. 씨위드 제공
배양육은 가축으로부터 살아있는 세포를 추출해 배양기에서 근육 또는 지방 조직으로 키워내는 기술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어떤 세포를 추출할지, 어떤 배양액으로 세포를 기를지, 조직 구조는 어떻게 만들지 등 매 순간 최선의 기술을 찾아 조합해야 제대로 된 배양육을 생산할 수 있다.
배양육 생산 기술의 최전선을 확인하고자 10월 6일, 경기 광명에 위치한 씨위드 본사를 찾았다. 씨위드는 해조류와 미세조류를 이용해 차별화된 배양육을 제조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모든 배양육 제조의 첫 단계는 세포 추출이에요. 소, 닭, 돼지, 새우, 연어 등 어떤 동물 세포에서 추출하느냐에 따라 최종 결과물이 달라지죠.”
이희재 씨위드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배양육 제조 시설 한 켠의 인큐베이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인큐베이터에는 빨간 배지가 담긴 페트리 접시가 있었다. 이 CTO가 꺼낸 페트리 접시를 현미경으로 관찰하자 맨눈으로는 자세한 모습을 볼 수 없던 동물세포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막 증식을 시작한 한우 세포입니다.”
배양육을 만들 수 있는 세포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씨위드는 근육 위성세포를 추출해 배양육을 만들고 있다. 근육 위성세포는 체내에서 골격근에 상처가 났을 때 재생시키는 역할을 하고, 오직 근조직으로만 분화한다. 세포를 보호하고 지지하는 세포외기질이나 콜라겐 등을 합성하는 섬유아세포나, 줄기세포 등 다른 세포를 배양에 이용하는 기업도 많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의 퓨처 미트는 배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돌연변이가 발생해 불멸화된 섬유아세포를 사용한다. 퓨처 미트는 섬유아세포를 지방세포로 교차분화(분화가 끝난 세포를 다른 종류의 세포로 전환해 배양)시키고 있다. 근육세포로 교차분화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세포는 종류에 따라 증식할 수 있는 횟수(세포 증식 한계)가 각기 다르다. 근육 위성세포는 세포 증식 한계가 20~30번 정도다. 20~30번 증식하고 나면 새 세포를 추출해 넣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이론적으로 무한 증식이 가능한 불멸화세포나 세포 증식 한계가 높은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동물에서 추출하는 세포 수를 줄일 수 있다. 이 CTO는 “근육 위성세포는 세포 증식 횟수가 적기 때문에 동물에서 세포를 더 많이 채취해야 하는 것은 맞다”며 “하지만 무한증식을 하는 세포(결국 일종의 암세포다)로 만든 배양육이 한국에서 식품으로 허가받을 수 있을지, 식품으로 허가받는다 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 근육 위성세포를 쓰고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배양육에 사용 가능한 세포의 종류에 대해 뚜렷한 규정은 없는 실정이며 한국도 마찬가지다.
많든 적든 동물 세포를 채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배양육의 근본적 한계다. 그래서 씨위드는 자체 목장을 따로 둬 최소한의 가축을 스트레스 받지 않는 환경에서 사육하고, 사료를 개선해 가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도 줄인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 해조류로 뼈대 만들고, 미세조류로 세포 키운다
해조류에서 추출한 알긴산으로 만든 뼈대는 세포가 자라는 틀이 된다. 씨위드 제공
세포를 2차원으로 어느 정도 배양하고 나면 입체 구조로 키울 차례다. 씨위드는 이 과정에 미역과 같은 해조류를 사용했다. 해조류의 주요 성분인 알긴산을 분리해 세포가 자랄 뼈대(스캐폴드)를 만들었다. 이 CTO가 보여준 해조류 유래 뼈대는 색과 모양이 스펀지와 유사했다. 세포는 뭉친 형태로 자라기 때문에 두껍고 원하는 형태의 배양육을 얻기 위해서는 뼈대를 사용하거나, 유전자를 조작해야 한다.
“뼈대 재료로 콩에서 추출한 단백질(TSP)을 쓰는 기업이 가장 많아요. 고기와 비슷한 식감을 구현하는 데 탁월하지만 물성을 변형하기가 쉽지 않고 식물성 고기 특유의 이질적인 맛이 똑같이 난다는 한계가 있죠. 알긴산은 독성이 없고 분자 요리 등 식용으로도 많이 쓰여온 물질이라 안전하고 물성 조절도 쉬워요.”
씨위드가 해조류를 뼈대로 선택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해조류는 내부의 독특한 균사 구조를 영양분의 이동 통로로 이용한다. 세포를 배양할 때도 똑같이 이 통로로 영양분을 공급하면 좀 더 두꺼운 배양육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CTO는 “기존에는 배양육의 두께 한계가 약 4mm라고 여겨졌지만 해조류를 이용해 1cm 이상으로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며 “3cm 이상도 가능한지 시험 중”이라고 말했다.
3차원 성장 단계는 전체 배양육 생산 과정 중 가장 오래 걸리는 과정이다. 동시에 가장 실패율이 높은 과정이기도 하다. 이 CTO는 “특히 배양기에서는 세포뿐만 아니라 세균도 급성장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항생제를 사용해 살균 처리를 완벽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포는 배양기에서 대략 한 달 동안 뼈대를 따라 자라 근육 조직으로 분화한다. 이때 성장에 필요한 호르몬과 성장 인자를 공급하는 배양액이 필수적이다. 전통적으로 세포 배양에서는 배양액에 소 태아 혈청(FBS)을 사용해왔다. 이는 배양육이 무분별하게 희생되는 동물을 없앨 것이란 기대에 어긋난다
배양육 기업도 이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FBS를 대체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씨위드는 미세조류로 자구책을 마련했다. 씨위드 실험실의 배양기에 가득 든 초록색 액체의 정체가 바로 배양에 활용하는 미세조류다. 이 CTO는 “FBS보다 농도는 낮지만 미세조류에도 세포 성장에 필요한 호르몬과 성장 인자들이 들어 있다”며 “게다가 FBS와 함께 넣어줘야 하는 아미노산, 단백질, 비타민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씨위드는 이를 통해 전체 배양액의 10%를 차지하던 FBS 사용량을 1%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론적으로 0%도 가능하지만 가격이 훨씬 비싸지기 때문에 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배양육은 아직 실제 고기와 완벽히 똑같지 않다. 실제 고기는 근육과 지방이 적절히 섞여 있지만, 현재 대부분의 배양육 제조 기업은 근육이나 지방 중 한 가지로만 배양육을 생산하고 있다. 기술적 한계 때문이다. 고기와 달리 낯설게 보이는 이유도 외형이 근육 세포로만 이뤄졌기 때문이다.
배양육의 가장 난관은 고기 특유의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씨위드는 식품과학과 재료공학을 전공한 연구원들로 구성된 관능팀을 따로 두고 있다. 실제 고기를 따라잡기 위해 배양육의 탄성을 측정하고 최적의 첨가물을 찾고 있다.
○ 식품으로 인증받기 위해선 새로운 허가 절차 필요
일렬로 늘어선 플라스크에 근육 위성 세포를 배양하기 위한 빨간 배지(DMEM)가 담겨 있다. 배지에 담긴 세포는 인큐베이터로 이동해 배양한다.
씨위드는 내년 6월 배양육 제품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품으로 출시하기 위해선 우선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허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식약처에는 아직 배양육과 관련된 규정이 없다. 현재 배양육 식품에 대한 안전성 및 품질 기준을 제정한 나라는 싱가포르가 유일하다. 이 CTO는 “올해 말쯤 배양육 안전 규제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특히 배양에 사용된 FBS와 같은 물질은 처음 식품으로 심사받는 것이기 때문에 안전성 평가를 토대로 새로운 규제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항생제에 대한 새로운 기준도 필요하다. 현재 육류는 체내 항생제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도축하기 한 달 전부터 항생제 휴지 기간을 갖는다. 세포 추출 시엔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 배양할 때 세균 성장을 막기 위해 넣는 항생제는 어떻게 규제할지 새로 정해야 한다.
씨위드는 이 모든 허가 절차를 통과한 뒤 출시한 첫 제품의 이름도 미리 정해 뒀다. ‘웰던 1.0’. 이 CTO는 “‘배양육’이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거부감이 있다”며 “‘고기’라는 단어를 못 쓸 경우를 대비해 고기를 연상시킬 수 있으면서도 친숙한 이름을 찾은 것이 바로 ‘웰던’이다”고 말했다. 영어 ‘웰던(well done)’은 은어로 ‘고기를 못 먹는 사람이 먹는 고기’라는 뜻도 있다.
이 CTO는 배양육이 고기의 모사품이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고기로 인식되길 바랐다. “실제 고기와 얼마나 유사한지에만 집중하면 가격이나 맛, 향 측면에서 경쟁력을 얻기 힘들 수도 있어요. 실제 고기와 비슷하면서 다른, 새로운 유형의 고기가 배양육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배양육은 곧 실제 고기만큼 맛있으면서 새로운 식품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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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11월호 [기획]